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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공시/서비스

일본식 ‘계’ 모델 넘어… 한국 상조업 재편한 토종 사모펀드

조선비즈 2025/07/11

이 기사는 2025년 7월 11일 16시 1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지난 4월, 국내 1위 상조 회사 프리드라이프가 웅진그룹의 품에 안겼다. 기업가치는 9000억원.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VIG파트너스는 이번 매각을 통해 투자 원금의 4배 이상을 벌어들이게 됐다.프리드라이프는 9년 간 VIG파트너스와 함께 하며 많은 기록을 새로 썼다. 1980년대 상조 산업이 한국에 태동한 이래, 최초의 M&A이자 기관 투자 사례였다. 또 6개 회사가 하나로 합쳐져 시장 1위 사업자로 올라선 것은 상조 뿐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일본에서 건너온 산업, 한국에서 달라진 길국내 상조 산업은 본래 일본의 모델을 본뜬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역 단위로 장례를 준비하고 상부상조하던 ‘계(契)’ 시스템이 점차 상조회사 형태로 발전했으며, 현재 전국에 2000여 개의 상조 업체가 존재한다. 대부분 지역에 뿌리내린 중소 규모 사업자들이다.이 모델은 1980년대 한국에도 유입됐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을 시작으로 지역 기반 상조업체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자연스럽게 한국 상조업의 형태도 일본과 유사할 수밖에 없었다.2013~2014년에는 전국 상조 업체 수가 300개에 육박할 정도로 난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토속 신앙이 발달한 일본과 달리 장례 문화가 지역별로 크게 다르지 않고, 절차도 전국적으로 표준화돼있다. 결국 그렇게 많은 지역 기반 상조 업체가 존재할 구조적 이유가 없는 시장이었다.신창훈 VIG파트너스 대표는 “그 때까지만 해도 영세 상조사들이 고객의 돈을 미리 받아놓고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폐업해버리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면서 “그 결과 소비자 피해 사례가 속출했고, 상조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VIG파트너스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기회’로 해석했다. 일본식 다핵 구조는 우리 문화에 맞지 않으니, 국내 상조 시장엔 대형화된 하나의 중심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전국 단위 장례 서비스를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재무 투명성이 담보돼야 했다. ‘이 회사가 10년 후에도 존재할까?’라는 소비자의 우려를 없애는 것이 산업 정상화의 물습潔駭.◇ 전국 40개 상조회사 직접 만났다...6개사 인수해 1위 업체로VIG파트너스가 상조 산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2014~2015년 무렵이었다. 당시 회사는 동양생명을 인수해 경영하며 보험사의 영업 방식과 리스크 헤지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가진 상태였다.VIG파트너스는 상조 산업을 바라보며 보험업과의 구조적 유사성에 주목했다. 특히 ‘선불 수익 모델’이라는 점에서 두 산업은 기본적인 수익 구조가 비슷하다. 보험은 고객이 매달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납입하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됐을 때 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상조 역시 고객이 생전에 선납한 금액으로 장례 발생 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모두 미래의 불확실한 사건을 전제로 현재의 수익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같다.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다. 보험은 손해를 전제로 설계된다. 예컨대, 고객이 10만 원짜리 보험료를 내고 3000만원을 보장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가입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험금을 청구할 지 가정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이때 예상보다 실제 청구율이 높으면 회사는 손해를 입는다.반면, 상조는 고객이 400만원을 내면 그에 상응하는 400만원 상당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끝나는 정액형 모델이다. 여기에는 보험처럼 손익의 ‘미스 매치’가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고객 수, 납입금, 서비스 단가가 비교적 고정적이기 때문에 재무 구조가 더 단순하고 리스크 관리가 수월하다.VIG파트너스는 2016년 첫번째 상조 회사를 인수하기까지 전국의 상조 업체들을 일일이 분석했다. 재무 상태가 불투명하거나 사건 사고 이력이 있거나 법인 형태가 불안정한 곳을 모두 제외하니 250여개 가운데 40여개 회사가 남았다. 신 대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40여개 상조사를 직접 만났다.이런 철저한 사전 조사 끝에 ‘좋은라이프’가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낙점됐다. 업계 10위권이었던 좋은라이프는 평판이 좋았고, 재무 상태도 상대적으로 건전했다. 이후 VIG파트너스는 연쇄적인 M&A 및 볼트온(bolt-on·동종 업체들을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합병하는 일)에 나섰다. 3년 간 4개 상조회사와 2개 장례식장을 인수했고, 모든 회사를 프리드라이프라는 단일 브랜드로 통합했다.VIG파트너스가 처음 좋은라이프 지분 70%를 인수했을 당시, 회사의 자산 가치는 1500억원에 불과했다. 좋은라이프로 시작해 6개 회사가 합쳐져 만榕沮 지금의 프리드라이프는 자산 가치가 2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상조 시장 점유율은 25~26% 수준(선수금 기준)으로, 2위 업체(11~12%)의 두 배에 가깝다.VIG파트너스는 단순한 인수자 역할을 넘어서 각 회사의 재무 구조를 점검하고 자산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자체적으로 간단한 벤치마크 모델을 만들어 몇 가지 재무 지표만으로도 회사 가치를 빠르게 산출하는 시스템도 개발했다.◇크루즈 여행 중 사망한 고객도, 천안함 용사 장례도…시스템 갖춘 대형 상조사VIG파트너스는 상조 회사의 시스템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가장 큰 과제는 ‘신뢰 회복’이었다.먼저 은행 지급 보증을 통한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상조 업체가 부도나더라도 고객이 낸 선수금은 은행을 통해 환급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실제로 프리드라이프는 현재 국내 시중은행 모두와 지급 보증 계약을 맺고 있다. 이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사례다.또 전국 단위 장례 인프라를 구축해 물리적 커버리지도 확보했다. 장례식장 운영, 의전팀 구성, 앰뷸런스 협력 업체 확보 등을 통해 고객이 언제 어디서든 일관된 품질의 장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몇 년 전 프리드라이프 고객 한 분이 동남아시아 크루즈 여행을 하던 중 배 안에서 돌아가신 일이 있다. 크루즈가 임시로 기착해 고인을 내려드려야 했는데, 각 국가마다 시신 반출 등에 관한 법규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외교부가 쉽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프리드라이프가 해당 국가에 가서 절차에 따라 고인을 모셔왔다.상조 산업은 많은 사건 사고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업이다. 그런 이유로 재무적투자자(FI)들이 진출하길 꺼린 영역이다. 우리는 이런 영역에 과감히 들어가 산업 구조를 바꿨고, 장례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신뢰할 수 있는 상조사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프리드라이프는 이를 토대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공공 의전 영역까지 진입하게 됐다. 천안함 용사들의 장례 등 국가적인 추모가 있을 때마다 프리드라이프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상조 산업은 단순한 민간 서비스업을 넘어, 사망 이후의 삶을 관리하는 사회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장례에 관한 복잡한 절차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 사업자가 등장한 것이다. VIG파트너스가 프리드라이프를 통해 만든 구조는 ‘지속 가능한 상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됐다고 평가 받는다.노자운 기자 jw@chosunbiz.comCopyrights ⓒ ChosunBiz.com